- 부다페스트의 봄(헝가리 혁명)의 배경
이전 글을 통하여 헝가리 공산정권의 수립부터 혁명전야에 일까지를 살펴 보았는데,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부다페스트의 봄'의 시작과 진행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서술해보려고 해
라코시의 퇴진
헝가리의 '스탈린'으로 불리우며,
독재정치를 자행하던 라코시였지만,
이전 글에서 서술하였 듯이 한번 실각한 이후 다시 스탈린주의적 독재자가 되는 길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는데,
1956년봄부터 그의 정권의 위기는 표면화 되었어
라코시는 공산당 내에서 이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아비판'을 해야하는 굴욕적인 처지에 내몰렸으며,
'헝가리 작가 동맹'과 '페퇴피 서클' 등의 '운동권 단체'는 공개적으로,
헝가리의 '자유화'와 함께 민족적 자립과 자주를 주창하였어
* 헝가리의 민주화 운동을 추동하는 힘은 공산당 일당독재와 빈곤의 원인이 된 경제체제에 반대하는 '자유화'요구와 함께 소련의 위성국화 되어버린 조국의 현실에 분노하는 '민족주의적' 감정에 의해 추동되었어
계속 밀리던 라코시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많은 정치범들 또한 석방해야 했는데,
그는 그들을 '침묵'을 지키는 조건으로 석방함으로써,
분노한 민심 이라는 '급한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풀려나온 정치범들이 연이어 라코시와 '국가보위부'에 의해 벌어졌던 경악스러운 만행들을 폭로하면서,
민심은 더욱 사나워졌고,
라코시는 1956년 6월21일 사임하였으며, 얼마 후 소련으로 망명하는 처지가 되었지
혁명
공산주의 집권세력은 라코시의 퇴진으로 이 성난민심을 달래고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새로 서기장으로 선출된 게뢰 에르뇌 역시 라코시와 마찬가지의 '교조주의적' 파벌에서 활동하였던 인물로,
'개혁'(그 중 일부는 더 나아가 레짐 체인지)을 요구하는 여론을 무마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어
그리고 1956년 10월 6일 라코시 정권 시절 대표적 희생자였던,
라이크 라슬로(헝가리 극우정권 시절 암약하며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인물로 국민들의 커다란 신망을 받던 인물이나 라코시에 의해 숙청되어 처형당함)의 유해를 다시 안장하는 행사에,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이 거대한 인파는 언제든 게뢰 정권의 타도에 나설 수 있는 거대한 힘으로 헝가리 집권세력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으며,
1차적으로 라이크 라슬로의 장례식을 치르며 '혁명'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헝가리 군중은,
1956년 10월 23일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여 그 세를 뽐냈고,
그들은,
너지 임레를 다시 수상으로 임명할 것과 더불어 '민주화'와 '자유화'를 요구하였어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지
"데모하는 놈들은 다 파시스트임ㅇㅇ"
* 자본주의 진영에서 반독재의 요구가 종종 '빨갱이'의 색깔이 덧칠해졌 듯이 게뢰는 자유화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파시스트'로 낙인찍기하여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어
하지만 이는 '결정적 실수'였고 '역효과'를 불러왔어
이러한 연설에 시위 군중은 격분하였고,
이제 시위는 단순한 '개혁'의 요구를 넘어선 '혁명'을 향해 치닫게 되었어
그리하여 '스탈린(동상)의 목'이 성난 시위 군중에 의해 잘리고,
지식인과 학생 중심이던 반정부 시위대에 수많은 '노동자'를 포함한 '일반 대중'이 합류하였으며,
라디오 방송국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되었던 '군부대'까지 시위대의 편에 합류하여,
게뢰의 연설이 있은지 하루만에 헝가리 시위는 '민중혁명화'하게 되었지
ㅅㅂ ㅈ됐네...
* 당황한 게뢰 에르뇌는 공산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시위대의 요구대로 너지 임레를 '수상'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지만, 10월 25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5.18 민주화 운동처럼 '헝가리 혁명'은 평화적인 시위에서 '무장봉기'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되었으며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과 헝가리 시민군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어
헝가리 공산당: 야 이 미친놈아 도저히 안되겠다. 너님 해고
* 헝가리 공산당은 공권력이 완전히 붕괴해버린 혼란상태에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발포의 책임자인 게뢰를 해임하고 카디르를 새 서기장으로 임명하였으며 당명 또한 기존의 '헝가리 노동자의 당'에서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바꾸었어
이제 '나쁜' '헝가리 노동자의 당'의 시대는 가고 '착한'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시대가 왔습니다 여러분^^!!!
응 개소리 집어쳐~
* 그러나 겨우 그 정도의 조치로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당연히 터무니없었으며, 헝가리 군중은 이제 단순한 지도자의 교체가 아닌 '완전한 민주주의' '자유' 그리고 '독립'을 요구하였어
이러한 상태에서의 '민중의 힘'으로 수상의 직에 오른 너지 임레는,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여 '스탈린주의자'들을 내각에서 배제하고,
'일당 독재의 폐지' '사회민주당 재설립' '사회 여러단체와의 연립정부 구성'을 발표하였어
흐루시초프: 이 하룻강아지 같은 새끼들이...
*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주의를 비판하였던 인물이지만, 일당독재의 폐지 등은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헝가리에서의 일을 방치한다면 소련 영향권의 다른 공산국가들은 물론 '소련'에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어) 민족자주와 반소련적인 구호가 담긴 이 '혁명'을 결코 묵과할 수 없었지
* 너지 임레는 헝가리 혁명의 진행 과정 중 11월 1일- 헝가리 땅에서 일단 물러갔던 소련군이 국경으로 대대적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듣게되었어
이 상황에서 헝가리 새 집권정부의 '서기장' 이었던 카디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너지 임레는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했어
그는 헝가리의 자체적인 국방력으로 밀려오는 소련군(소련군은 15만의 병력과 2천대의 탱크 및 공군력을 앞세워 헝가리의 영토로 진입하였어)
을 막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헝가리 민중들의 '순진한 기대'와 달리 서방 또한 3차대전을 각오하고 헝가리를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민중혁명은 이미 상당한 피를 흘린 채로 진행되었고 멈출 수 없었기에,
결국 '헝가리의 중립'과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탈퇴'를 발표하였어
종결
이는 어떤 의미에서 외교적 선언이라기 보다는,
너지 임레와 헝가리 민중의 '순교 선언'에 가까운 일이었어
막강한 소련의 군대는 헝가리 민중의 '화염병 저항'을 제압하고,
* 헝가리군에 저항 또한 있었지만 소련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
11월 4일 새벽 부다페스트에는 이미 소련군에 의한 포성이 굉음을 내며 울려퍼지기 시작하였으며,
11월 11일 마침내 소련군이 격렬한 저항을 진압하고 부다페스트를 완전히 장악함으로서,
1956년의 '헝가리 혁명'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어
* 약 3000명의 헝가리 시민이 이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부상자는 1만 3천에서 2만에 달했으며, 약 18만의 헝가리인들이 이 아비규환의 현장을 피해 오스트리아로 또 다른 2만명은 유고슬라비아로 도피하였어
그 이후의 이야기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너지 임레 또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너지 임레는 부다페스트 주재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하였고,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사이에는 너지 일행의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을 나가는 대신 체포하지 않기로 밀약이 맺어졌으나,
소련은 그 약속을 어기고 너지와 그의 일행이 대사관 관저를 벗어나자마자 체포하여 처형하였어
* 너지 임레는 평생 헝가리에 대한 '애국심'과 함께 '공산주의적 신념'(헝가리 공산주의 정권의 긍정적 유산으로 평가받는 토지개혁- 몰수된 토지는 소농민층에게 분배됨-의 실시 또한 당시 농업장관 이었던 너지의 작품으로 개혁적 성향과 함께 이러한 성과는 그를 민중들이 지지했던 이유가 되었지)을 유지했던 인물로 분명히 '개혁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개혁적 성향과 더불어 '공산주의 일당독재'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어. 그러나 그는 혁명의 와 중에 본인의 소신을 꺽고 민중의 뜻을 수용하여 '다당제'의 도입을 선언하였는데, 이러한 다당제의 도입과 헝가리의 중립선언,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등은 소련의 개입을 부른 '이상주의적' 조치로 비판 받기도 하지만,
너지 임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어
"모든 공산주의자가 다 인민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내 생명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겠다."
이것이 그가 소련군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으며,
교조적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수정주의자로 비난하였지만, 너지 임레는 자신의 '이념과 현실 그리고 생명' 까지도 '인민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바칠 수 있었던 '초심'을 간직한 진정한 '인민의 혁명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사견을 덧붙임
* 소련은 다른 공산권 국가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그를 처형하였고 이후 소련의 힘으로 집권한 헝가리 정부는 너지 임레를 '반역자'로 매도하였지만 1989년 6월 16일 너지 임레의 처형 31주년에 행해진 완전한 복권한 함께 재야 세력의 주도로 거행된 공식적인 국장은 헝가리 민주화의 최대 분수령이 되었으며, 이 '공산주의자'는 '헝가리 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원히 남게되었어
* 한편 위에 언급한 이 혁명의 과정에서 사라진 카디르는 민중혁명을 배반하고 소련에 붙었는데, 아무리 냉전시대였고 약육강식의 국제질서라고는 하지만 소련은 그들의 개입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을 '노동자-농민 혁명 정부'의 '대표자' 카디르의 '개입요구'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어
* 카디르는 이로 인해 헝가리 국민들의 엄청난 증오를 받아야 했지만, 그는 소련으로부터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국내정책에 있어서는 자율권을 얻어내는 수완을 발휘했고 경제적으로는 덩샤오핑의 선배격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나름대로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어. 이로 인해 오늘날 헝가리에는 그에 대한 증오의 감정과 함께 향수 또한 존재함(현재 헝가리의 집권자인 '스트롱맨' 빅토르 오르반은 젊은 시절 너지 임레의 추종자였으나 오늘날에는 카디르에 대한 향수를 선동하여 본인의 지지율을 올리는데 이용하기도 해)
* 1956년의 헝가리 혁명은 실패하였으나 그들의 흘린 피는 헛되지 않아 '헝가리의 민주화'를 위한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보아도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데 장 폴 사르트르(이 사람은 심지어 6.25 전쟁에 대한 북침설까지 지지한 인물이었으나) 등 수많은 서구권의 좌파적 지식인들에게 소련의 '헝가리 침공'은 '노동자 조국' 소련의 실체(헝가리 혁명 과정에서 사망한 사망자 중 53%가 노동자였어)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헝가리 사태를 계기로 기존의 좌파논리가 퇴조하고 '신좌파' 사상이 대두하였으며 이는 6.8혁명으로 이어졌어
* 이 '부다페스트의 봄'의 희생자를 추모한 김춘수 시인의 시를 첨부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함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다뉴브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瞬間),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上空)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靈魂)은
감시(監視)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江)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旋律)일까,
음악(音樂)에도 없고 세계지도(世界地圖)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漢江)의 모래 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惡魔)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허공(虛空)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네가 한 행동(行動)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漢江)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도
동포(同胞)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記憶)의 분(憤)한 강(江)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同胞)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英雄)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抗爭)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銃)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人類)의 양심(良心)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弱)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前) 세 번이나 부인(否認)한 지금,
다뉴브강(江)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 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同胞)의 치욕(恥辱)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非情)의 수목(樹木)들에서보다
치욕(恥辱)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人間)의 비굴(卑屈)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威脅)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다뉴브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瞬間),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上空)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靈魂)은
감시(監視)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江)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旋律)일까,
음악(音樂)에도 없고 세계지도(世界地圖)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漢江)의 모래 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惡魔)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허공(虛空)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네가 한 행동(行動)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漢江)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도
동포(同胞)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記憶)의 분(憤)한 강(江)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同胞)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英雄)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抗爭)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銃)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人類)의 양심(良心)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弱)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前) 세 번이나 부인(否認)한 지금,
다뉴브강(江)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 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同胞)의 치욕(恥辱)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非情)의 수목(樹木)들에서보다
치욕(恥辱)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人間)의 비굴(卑屈)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威脅)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 김춘수 시인의 이 시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실 <사상계>에 실렸어
* 사진의 인물은 '셀레쉬 에리카'라는 이름의 소녀로 헝가리 혁명이 발발하자 남자친구가 조직한 '레지스탕스'에 참여해 수차례 소련군과 전투를 치뤘으며, 안타깝게도 비무장 상태에서 적십자 유니폼을 입고 부상병을 간호하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살해되어 '혁명의 순교자'로 추앙받는 인물이야... 사망할 당시 그녀의 나이 불과 15세...
* 긴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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